최재형 선생(‘고려인문화센터’의 역사관에서 촬영)

러시아 연해주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찾아서

홍창수(고려대 교수·극작가)

지난 8월12일 러시아의 극동 지역을 여행하는 중에 조그만 도시 우스리스크를 들렀다. 우스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 역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반 걸리는 곳. 관광 안내 자료를 보니 우스리스크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고택이 관광지의 한곳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내게는 낯익은 이름이 아니었다. 한국근대사를 통해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주로 우익 민족주의 계열이었고, 사회주의 계열이나 북만주, 러시아 등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지식이 얕았다. 

우리나라 1970년대 후반의 도시 분위기를 연상하는 소도시 우스리스크. 특별히 기억할만한 현대식 고층 빌딩들이나 건물들은 없고 10층 내외의 건물들과 아파트들, 개인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거리의 가로수와 잔디도 제대로 조경을 하지 않았고 건물들도 다소 낙후하여 개발과 발전의 도상에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우스리스크가 소도시라서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찾는 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는데 예상외로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여행사에서 제공한 관광 안내 자료만 믿고 길을 나섰다가 곤혹을 치렀다. 안내 지도에 고택의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한 시간 넘게 걸으며 길을 헤매었다. 우리나라처럼 거리의 안내판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하물며 모르는 러시아어로만 되어 있으니 오죽하랴. ‘지명이 적힌 종이만 들고 지도에도 없는 곳을 찾아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절감했다.

최재형 선생의 고택

  어린이들을 위한 시민공원 인근에 있는 최재형 생가는 차량들이 오가는 조그만 도로변에 있었다. 눈높이의 담장 넘어 슬레이트 지붕과, 다섯 개의 창문과, 오래되어 하얀색이 누렇게 변한 벽이 있는 단층집이었다. 첫눈에 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폐가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 벽의 중앙에는 태극기와 러시아 국기가 함께 그려져 있는, 조그만 현판이 있었는데 건물과 대비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현판이 없었다면, 이 집을 못 찾고 그냥 돌아왔으리라. 이곳을 찾는 한국 관광객을 위해 고택으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와 인근에 한글 안내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택의 현판에는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고택의 벽에 걸린 현판

“최재형의 집 / 이 집은 연해주의 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이며 전로한족중앙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였던 최재형 선생이 1919년부터 1920년 4월 일본헌병대에 의해 학살되기 전까지 거주하였던 곳이다.” 

  최재형 선생(1858∼1920). 러시아명 표트르 세묘노비취 쵸이. 우리의 역사교과서에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아 아직도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독립운동가. 연해주에 이주한 한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어 ‘빼치카’(난로)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선생. 9세에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노우키에프스크에 이주, 러시아에 귀화한 인물. 상인으로서 부를 축적하고 관리가 되어 러시아로부터 신임을 얻은 인물. 유학생을 위한 장학사업, 러일전쟁에 참전하여 일본에 항전한 의인. 1908년 4월 연추(현재의 크라스키노)에서 이범윤, 이위종과 함께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 이 동의회 소속이었던 안중근이 1909년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하게 도와줬던 인물. 또한 블라디보스톡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전멸시킨 의병대장.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군 양성과 정부 수립을 목표로 1911년 신한촌에 ‘권업회’를 결성한 인물이었다. 선생의 활약이 어디 이뿐이랴.

  지금의 고택은 최재형 선생이 1919년에서 1920년 4월 일본헌병대에 체포되기까지 묵었던 곳이라 한다. 1920년 일본이 연해주를 침략하여 한인을 학살한 ‘4월 참변’을 일으켰을 때 선생은 재러 한인의병을 모아 시가전을 벌이던 중 체포되었고 사흘 후 사형당하였다. 

  무엇이 나를 이곳에 들르게 했을까. 꼭 찾아봐야 할 어떤 사명감이나 의무감도 없지 않은가. 이 집은 최재형 선생이 묵었고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체포되어 사형에 이르게 된 사연을 담고 있는 고택. 덩그러니 현판 하나가 선생이 묵었던 곳임을 가리키고 있을 뿐, 여느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는 고택. 안내 지도에 고택의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돌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조그맣지만 큰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 교과서에 언급된 대로 홍범도 장군을,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군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장군에 대해 자세히 알고난 뒤 그 부끄러움과 먹먹함은 잊을 수가 없다. 소련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수많은 한인들과 함께 강제 이주당했던 홍범도. 생활고 때문에 고려극장의 수위로, 말년에는 정미공장 직공으로 살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역사의 영웅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말년을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내다 죽음을 맞이한 홍범도 장군. 독립운동가로 살다 장렬히 전사하거나 사형당했다면 나는 오히려 그 영웅의 한 생애를 쉽게 정리했을 것이다. 우스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고택을 찾아간 까닭은 선생에 대한 내 무지와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최재형 선생과 그 자취,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숭고한 행동과 정신을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느끼고 되새기고 싶었던 것이리라. 21세기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수난의 역사 속에 자신을 던진 선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 것이다

최재형 선생 고택 앞에서 필자

지난 7월 16일 국내에서 최재형 선생을 기리는 ‘최재형기념고려인지원사업회’의 창립 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한다. 또한 이번 광복절을 기념하여 항일의병장 허위 선생의 후손, 헤이그 특사 이위종 선생의 후손들과 함께 최재형 선생의 후손 8명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하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모두 함께 뜻을 모아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기뻐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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